도시국가들에게 떠넘겨져 확산되어 간다.

로마는 납세 유권자의 도시국가였다. 권력은 소수 엘리트가 쥐고, 그들이 정부를 구성했 다. 또 원로원 의원과 군인만이 집정관에 선출될 수 있었다. 모든 투표는 직접선거 방식이 어서, 최상의 가치로 간주되는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여우도 있고 로마 에서 살 필요도 있었다. 상류층 사람들은 예술이나 그밖의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품위가 없다거나 자유시민으로서 권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법률이나 정치에 관련된 자유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정치 집회나 기타 회합 등에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선거에서 피선될 수 있을 만한 재력도 가지고 있었고, 시민들을 위해 화려한 구경거 리를 베풀거나 대규모의 공공건물을 지울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이는 로마뿐 아니라 로 마 제국 안팎의 도시국가들에서도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엘리트들의 이러한 권위와 부로 인해서, 또 제정기 황제의 전재로 인해 서 공화주의적인 원칙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 원칙을 지킬 책임은 다른 중소 로마, 강력한 귀족정치의 모델 집정관, 사법관, 지방총독 등 로마 행정관들의 권력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비하면 훨씬 강력했다. 물론 그들에게더 제한 조항이 있었다. 매년 세금을 내야 했고, 그들이 내린 결 정이 성직자나 일부 고위 행정관(호민관, 집정관)들에 의해 유보되거나 거부당해 취소될 수 있었다. 걸국 그들도 법에는 승복해야 했던 셈이다. 행정관을 보좌하는 기구로는 원로원이 있었는데, 그 권위와 위세로 행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도시행정에 어느 정도의 일 관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종종 로마의 가장 전형적인 정치 형태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제정은 겨우 4세기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황제나 제후를 꿈꾸는 권력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위와 같은 제도적인 균형을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군인과 같은 주요 세력들은 평생토록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한 경우 정치. 법률적 난제를 종결짓기 위해 일반 시민이나 행정관의 신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특권도 가지고 있었다. 제정기는 도시국가의 황금기였다 제정을 거치면서 로마의 정치적 자유는 속박당했으며, 제국 내에서 독립을 꾀하는 어떠한 의지도 무참하게 짓밟혔다. 하지만 이를 오늘날의 제국주의나 독재정치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로마인들은 그렇게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전혀 그럴 의지도 없었 다. 게다가 제정의 성립과 발맞추어 그전 시기보다 좀더 깨끗하고 좀더 강력한 행정부가 정립되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도시국가와 사회에까지 전파되어 나타난다. 황제의 절대권 위와 그에 버금가는 행정권을 말미암아 제도의 미흡함과 부당함을 보완할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소위 문명권의 도시들은 수세기 동안 하나의 단일한 법률적, 행정적 원칙아래에 통 합될 수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권위하에서는 어떠한 저항이든지 쉽사리 제압할 수 있었다. 반면에 개인 과 집단의 결속은 더욱 용이해져서, 순수하게 로마인 엘리트 계층으로 한정하던 징집대상을 제국 내 대도시의 귀족들에게까지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지방 정치는 이러한 새로운 생활 에 적응해 나가는 한편, 전통도 함께 이어가고 있었다. 로마나 이탈리아 반도 내의 다른 지 역도 마찬가지지만, 일상생활은 도시의 전통적인 틀 속에서, 그리고 지역 행정관이나 지역의 풍속에 따라 이루어졌다. 로마에서 파견하는 관리는 로마의 권위를 상징했으며, 세금의 징 수나 제국 영토의 방어, 공공질서의 유지 등과 같이 오직 로마인의 이해와 관련된 일에만 개입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영지나 지방 순회중에 중죄 재판을 열기도 했다. 초기 로마시 대의 전쟁이 일단락된 후 로마에서 임명한 총독들이 수많은 도시에 상주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이 도시들은 강력한 주변 적들의 끊임없는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평화롭고 안 정된 한 시대를 보낼 수 있었다.